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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슈

열정의 혁명가 =>체 게바라


 "저는 더 이상 과거의 제가 아닙니다."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난과 불평등에 찌든 남미 대륙을 돌아본 뒤 청년 에르네스토(체 게바라의 본명.사진)가 비장한 표정으로 던진 말이다. 이후 그는 의사의 꿈을 접고 쿠바로 건너가 혁명가로 변신한다. 그가 쓴 동명의 여행기를 영화화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한 장면이다.

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한 여행기와 영화 속에서 체 게바라는 민중을 향한 뜨거운 사랑, 불합리한 체제를 바꾸려는 순수한 열정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오늘 세상을 떠난 지 40주년이 되도록 그가 '좌파' 노선을 걷는 남미 각국은 물론 전 세계 많은 젊은이로부터 변함없이 영웅 대접을 받는 이유다. 그의 유해가 묻힌 쿠바의 산타클라라에선 피델 카스트로(국가평의회 의장)의 동생 라울 대신 참석한 가운데 40주기 기념식이 열릴 예정이다. 1997년 게바라의 유해가 발굴된 볼리비아의 발레그란데 마을에서도 그의 열렬한 추종자인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추모식을 주관한다. 과테말라.멕시코.아르헨티나에서도 그를 기리는 행사가 잇따른다.

그러나 이같이 성대한 추모 열기 속에서 최근 게바라의 숨겨진 실체를 폭로하는 증언과 출간이 연이어 나왔다. 67년 10월 8일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 도중 미 중앙정보국(CIA)이 보낸 요원과 정부군에 체포되던 마지막 순간만 해도 지나치게 미화됐다는 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기존엔 게바라가 최후까지 싸우다 실탄이 떨어져 항복했다고 알려졌었다. 그러나 당시 게바라를 생포했던 볼리비아의 가리 프라도 장군은 4일 AP 통신과의 회견에서 "게바라가 '쏘지 마라. 내가 바로 체다'라며 순순히 투항했다"며 "다른 사람에게 공포감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동정을 받아야 할 인물이었다"고 폄하했다. 투항할 때 게바라는 재판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 듯하나 볼리비아군은 다음날인 9일 그를 총살시켜 버렸다.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에서 풀헨시오 바티스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뒤의 행적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많은 이가 게바라가 쿠바 혁명 후 권력자로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다시금 콩고와 볼리비아 혁명에 뛰어든 순수성을 찬미한다. 그러나 쿠바 출신 학자 훔베르토 폰타바는 올봄 펴낸 '체 게바라의 실체를 폭로한다(Exposing the Real Che Guevara and the Useful Idiots Who Idolize Him)'에서 "그가 아바나에 입성한 뒤 호화로운 저택에서 새로 결혼한 백인 아내와 함께 귀족적인 삶을 즐겼다"고 썼다. 또 게바라가 바티스타 정권에 충성한 군인들은 물론 소녀.임신부 등 힘없는 양민까지 직접 사살하기를 즐긴 살인마라고도 주장했다. 카스트로가 전투에 무능한 게바라를 발탁한 이유도 집권 후 숙청작업에서 그 같은 냉혈한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폰타바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역시 쿠바의 정치 선전부가 출간한 것이라며 "그 내용을 그대로 믿는 진보 진영과 할리우드 연예인들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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